-조하식(수필가•시조시인, Ph.D.)-
* 주제어: 사람을 만드는 배움터 / 상식을 갖추는 배움터 / 지혜를 깨닫는 배움터
아울러 학교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무기력을 탈피하는 프로그램이 긴요합니다.
한창 활기차고 생기 넘치게 뛰어놀아야 하는 아이들이 점점 시들어가고 있으니까요. 근원을 모르는 교육열에 불타 속절없이 한 줌 재로 변해가는 형국입니다. 인문계 고등학교의 경우 아침 8시 전후부터 시작된 일과가 밤 10시가 되어서야 끝이 납니다. 이도 모자라 일부 학교에서는 여태껏 암암리에 밤 11시, 아니 자정까지 연장시키는 학교도 있다고 합니다. 이래서야 언제 자고 쉬며, 언제 생각을 하고 장래를 설계할 수 있겠습니까? 국가차원에서 뭔가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지 않는 한 아직 미성숙한 심신이 병들 수밖에 없는 현실을 뼈아프게 들여다봅니다.
첫째, 목표의식이 결여된 학생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학교는 이미 꿈을 상실한 현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교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학부모들이 직접 목도한다면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 될 것입니다. 비록 일부라고는 하지만 상당히 보편화된 풍경 가운데 하나가 수업시간에 졸거나 엎드려 자는 모습입니다. 앞서 지적한 대로 밤새 컴퓨터 앞에서 게임이나 음란물을 즐기다가 낮과 밤이 뒤바뀐 장면입니다. 현재 중고등학교 성적 중에는 수행평가라는 게 있어서 나름대로 평소 점수를 통해 지도를 병행하는 데도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아예 그렇게 생활습관으로 굳어진 양상이니까요. 거기에는 선행학습이 이루어진 탓도 있습니다. 미리 보습(補習) 학원을 통해 어설프게나마 들은 내용이기에 다시 집중하기가 어려운 터입니다. 수박 겉핥기식이지만 내용에 흥미를 잃은 아이에게 제아무리 설명을 한들 귀를 기울이지 않는 태도를 바로잡기는 어렵습니다.
둘째, 필요하다면 유급도 시켜야 합니다.
이는 사실 예전에는 시행했던 제도입니다. 그런데 부작용이 있다하여 전면적으로 없애다보니 그 후유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학력이 미달하는 아이들이 재기할 기회를 잃어버린 셈입니다. 상대적으로 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에게 월반을 허용한다면 반대로 뒤처지는 아이들을 지도할 방안을 찾는 길은 당연합니다. 수월성 못지않게 보편성 또한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지요. 부실한 교육결과를 방치한 채 예외 없이 획일성을 추구한다면 직무를 태만히 하는 행위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방과후학습을 통해 학력신장을 담보하든지, 과감하게 유급을 실시하든지 양단간에 결단을 내릴 시기가 왔습니다. 공부에 흥미를 잃고 한없이 무기력한 아이를 용인하는 것은 그 아이 자신을 위해서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제는 나태한 태도를 묵인하는 잘못은 뜯어고쳐야 합니다. 그것이 뒤떨어진 아이들을 아우르며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믿습니다.
셋째, 대학 정원을 과감히 줄여야 합니다.
3년간, 아니 12년 이상 꼴찌를 해도 대학에 들어가는 현실에서는 절대 양질의 고등교육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대학 정원보다 진학자가 모자란 지 벌써 몇 년째입니까? 도대체 이처럼 대량 미달사태를 빚는데도 일선 고등학교에 가서 구걸하듯 학생 유치를 위해 손을 내밀 참이랍니까? 그러니 OECD 가입국 가운데 대학경쟁력이 최하위권을 맴도는 것입니다. 대부분 4년제 대학의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40명 전후라니 이런 한심한 실태를 언제까지 두고 볼 참인지 교육당국에 묻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부실한 대학생을 양산하는 한 국제경쟁력을 갖추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급변하는 국제 현실은 갈수록 치열하고 냉엄합니다. 첨단시대에 걸맞은 인재를 길러내지 않고서 선진한국은 요원합니다. 과거 대학에 가지 못한 한을 풀었던 이상한 잔치는 이제 그만 멈춰야 합니다. 비싼 등록금을 들여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고등실업자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면 이는 학력 인플레이션을 넘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국가적 낭비를 초래할 테니까요. 대학의 학문이란 누구나 해야 하는 통과의례가 아니라 역량이 있는 지성인을 기르는 훈련과정일 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야말로 일개인의 지적 허영을 과감히 벗어버릴 때입니다.
넷째, 사회에서 요구하는 봉사활동은 그래도 유효하다고 봅니다.
요즘 청소년을 두고 고생을 모르고 자라난 세대라고들 합니다. 한마디로 땀의 중요성을 체험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인내할 줄 모르는 아이들이 어찌 험난한 세태를 이겨나갈 수 있겠습니까? 당장은 싫더라도 오래 참고 견디는 훈련이 절실합니다. 힘들수록 함께 힘을 합쳐 살아나가는 공동체의 가치를 일러줘야 합니다. 자꾸 다양한 경험을 쌓아갈 수 있는 장을 제공하는 것이 공교육 기관에서 할 일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청소년들이 방학을 부실하게 보내는 실태를 접하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어렵겠지만 국가예산을 투입해서라도 하루빨리 대책을 수립해야 합니다. 사교육에 매몰되어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방치하고서는 미래가 없으니까요.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어른들의 진정한 책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