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어: 사람을 만드는 배움터 / 상식을 갖추는 배움터 / 지혜를 깨닫는 배움터
이와 같이 학교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권보호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요즘 학교 안팎에서 감히 교사를 때리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어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런 주제를 화두로 삼기란 얼마만큼의 숙고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자칫 알량한 변명으로 비쳐질 수 있는 현안이기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신문(2008.12.16일자 중앙일보)에 난 이훈범 기자의 ‘대한민국 선생님 전 상서’와 다음 날 ‘안주선 독자 의견에 대한 박문범 예비교사의 글’에 더해, 한 지역신문(2008.12.17.-24.-31일자 평택시민신문)을 강타한 어느 시민기자의 연이은 일갈을 읽고서는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들과 씨름하며 온갖 잡무에 시달리는 학교현장을 전혀 모른 채 주당 수업시수를 근무시간으로 오해한 독자의 무지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고 싶지도 않지만 천부당만부당한 의견에 대해서는 이것저것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먼저 교사의 권위를 스스로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씀이지만 지금 대한민국에 대통령부터 가장에 이르기까지 과연 권위라는 게 남아 있던가요? 불과 얼마 전 청소를 지도하는 가운데 교실바닥에 침을 뱉는 학생을 나무라는 교사가 되레 폭행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지요. 애초에 가정교육에서 비뚤어진 아이를 바로잡는 일이야말로 정말 풀기 힘든 문제입니다. 매만 대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매도당하는 터이지만 때로는 따끔한 매도 아이를 위한 아픔을 동반한다면 한 가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미운 아이보다 고운 아이에게 매를 댄다는 선인들의 지혜를 곰곰이 되새길 때입니다.
다음으로 아이를 해외로 떠나보내는 유학의 실체를 냉철하게 들여다보십시오. 중요한 바는 아이의 학문적 자질이고 일반 가정의 경제사정입니다. 남이 보내니 나도 보낸다는 식은 정말 곤란합니다. 그로 인해 아이가 이역만리에서 방황하다 못해 결국 깨지는 가정이 적지 않다고 듣고 있습니다. 당사자가 당한 불행이야 안 된 일이지만 고시원과 여관방을 전전한 것은 스스로 택한 길입니다. 모름지기 사람이란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합니다. 국내에서 학교교육을 받고도 어엿한 일가를 이루는 이들이 많습니다. 필요하다면 우리보다 앞선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반대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쉬이 범하지 말아야지요.
따라서 쉴 틈도 없이 아이를 학원으로 내몰아서는 절대 안 됩니다. 일과가 끝나자마자 마치 릴레이 경주하듯 한 주일에 열 군데 이상을 뛰는 경우도 있다지 않습니까? 꼭 필요한 과목을 보습(補習)하는 것이 상식이지요. 선행학습을 한 아이일수록 막상 교실에서는 해찰을 부리거나 무기력하게 졸기 일쑤입니다. 제대로 쉬거나 놀 시간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이지요. 혹여 아이가 밤새 컴퓨터 앞에서 게임에 빠져 있지나 않은지 부모님들은 잘 살펴보셔야 합니다. 우수한 학생들의 한결같은 전언은 학교수업에 집중했다는 말입니다. 교과서를 기본으로 자기주도 학습에 충실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건 으레껏 건네는 빈말이 아닙니다. 자녀교육에 꼭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공교육의 붕괴에 대해 한 마디 보태겠습니다. 물론 한 사람의 현직교사로서 책임을 통감합니다. 그러나 교칙에 의거하여 복장이나 두발단속을 해도 인권침해라고 트집을 잡고, 공부에 방해가 되는 휴대폰, 난청을 불러오는 Mp3등을 규제하려 해도 인권침해라고 항변을 하니 도대체 교사가 학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랍니까? 참다못해 영국은 교육 매를 허용했고, 프랑스는 초등학교에서 컴퓨터를 추방했으며, 일본은 이제 모든 학교에서 휴대폰 사용을 금지한다고 합니다. 무엇이 자라나는 아이를 위한 선택일까요? 교단에서 보건대 용의가 단정하고 행동이 방정한 아이가 목적의식과 성취동기가 분명합니다.
마지막으로 저 역시 왜들 대학입시에 목숨을 거는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지난 세대에게는 못 배운 한이 서려 있지요. 대학을 나와야 사람대접을 받는 세태와 의식구조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대학을 가는 마당이어서 졸업장만 가지고는 쓸모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고교 3년 동안 공부는커녕 책상에 엎드려 잠만 자도 오라는 대학이 널려있는 정원 미달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과감히 입학정원부터 대폭 줄여야 합니다. 그리고 기업은 대학을 향해 맞춤형 인재를 주문하고, 대학은 고등학교를 향해 교과내용을 요구해야 합니다. 더 이상 이런 기형적 구조를 끌고 갈 수는 없습니다. 시쳇말로 기둥뿌리가 빠지고 뼛골 빠지게 벌어서 대학을 보낸다한들 예전에 누리던 그 어엿한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태백’에 이어 ‘삼팔선’이라더니 ‘사오정’도 모자라 ‘오륙도’에 유배될 지경이니까요. 비록 일부 대학이긴 하겠지만 운영난을 이유로 수업에 출석하지 않아도 학점을 주는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명백한 직무유기요, 일종의 금품갈취와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교육정책 당국에서 눈을 부릅뜨고 감시감독하고 시정조치할 일이겠지요.
<교육개혁>, 절실합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상명을 하달하는 일방통행식 지시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교육을 책임지는 주체들이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묘안을 짜내야 합니다. 일선 교사와 학부모는 물론 사회 각계각층의 지도자들이 발 벗고 나서야 합니다. 그럴 때라야 이 땅에 미래가 있습니다. 나라가 어려울수록 모두가 자숙하고 절제하며 심사숙고하는 자세가 긴요합니다. 고 함석헌 옹의 가르침대로 생각하는 민족이라야 삽니다. 그 끝자락에 이 시대 교직을 소명으로 알고 교육활동에 매진하는 이들이 여럿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너나할 것 없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속담을 곰곰이 되새길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