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대학교는 A.T.피어선 박사를 기념하여 ‘피어선기념성경학원’이라는 이름으로 장로교와 감리교가 연합하여 협성신학교의 교사(校舍)를 빌려 1912년에 개교한 기독교 초교파 4년제 대학이다. 피어선 박사는 19세기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자이자 목회자면서 성경해석자로서, 드와이트 무디((Dwight L. Moody)와 동 시대에 활동했다.
영국과 미국에 있는 대학생들이 선교현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학생자원활동을 벌이면서 『더 미셔너리 리뷰 오브 더 월드』의 주필로서 세계 곳곳의 선교현장을 알리는 역할도 했다. 당시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언더우드를 한국 특파원으로 삼았는데, 언더우드를 통해 한국 선교의 역동성을 알고 나서 한국 방문을 간절히 염원하였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라”는 그의 신앙적 모토는 결국 1911년 일본과 한국 중국 인도를 여행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한국에서 약 40일간 전국을 순회하면서 목회자와 평신도를 대상으로 복음을 전했다. 한국에 성경학원을 세우고자 했던 그의 유언에 따라 언더우드 선교사가 초대 교장을 맡아 지금까지 초교파 기독교 학교로 운영되어 오고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학내 갈등으로 총장이 두 번 바뀌면서 교풍 쇄신과 ‘기독교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학내외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김문기 교수가 총장직무대행을 맡아 정체성 회복을 위한 노력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김문기 평택대학교 총장직무대행을 만나 과도기의 파고를 헤쳐나가는 평택대학교 학생들과 교수들의 비전에 대해 들어 보았다.
Q. 코로나19로 인해 학교 운영에서 겪는 애로는 어떻게 극복하고 계신지.
A. 코로나19는 누구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정부도 그랬듯이 우리 모두 혼란스러웠고 또 이렇게 오래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작년의 혼란기를 겪으면서 노-하우가 많이 축적되어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해 가고 있다. 하지만 정부지침에 따라 많은 강의를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했지만, 실습과 같이 반드시 대면 수업을 할 때는 제한된 인원으로 교육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학생과 교수가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오디오와 비디오 시설을 갖춘 룸을 설치해 이용하고 있지만, 교수님에 따라 줌으로 수업하는 경우도 많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얘기하면서 느끼는 것이 교육인데 참으로 안타깝다. 저도 지난 학기까지 교수였기 때문에 비대면 수업의 고충을 잘 알고 있다. 교수들의 경우 대면 수업보다 강의 준비에 3배 이상의 시간을 들이지만, 수업의 효과는 오히려 떨어지는 것을 보며 하루빨리 모든 상황이 안정되길 기도하고 있다.
Q. 코로나19로 인해 기독교 학교로서 부딪히는 문제도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A. 주일에 한 번씩 대학예배가 있었는데, 지금은 이마저도 비대면으로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학생들과의 교감도 떨어지고, 특히 기독교 동아리 활동이 많이 위축되어 있다. 또 한 가지는 일반 교회들이 정부지침과 어긋나는 집단예배를 강행하면서 국민들의 인식이 나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기독교 학교들도 애꿎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분명히 말아야 할 기독교 정신이 있다.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생명’이다. 누가복음 14장에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든 자를 고치면서 하신 말씀이 있다. 소가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지면 살려야 하느냐는 질문에 당연히 안식일을 어기더라도 소를 살려야 한다고 하셨다. 즉,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다. 율법주의자들은 안식일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것으로 해석하지만, 예수님은 사람을 위해 안식일이 있다고 하셨다. 코로나19가 있거나 말거나 우리는 절대 주일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생명을 존중하는 예수님 말씀과 맞지 않는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예수님 정신을 본받아서 교회를 넘어 사회과 공동체를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Q. 미얀마 민주화운동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셨던데, 다문화운동의 일환이신지.
A. 우리 학교는 다문화 사업과 다문화 학생들을 위한 교육을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두 형제·자매라는 기독교 정신에 따른 것이다. 다문화 사람들도 다 같은 우리나라 국민이다. 종교개혁 당시 프랑스에서 개신교인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제네바에 난민으로 갔다. 그들은 제네바에서 시계 공업을 발달시켜 지금까지도 스위스를 먹여 살리는 중요한 일자리를 만들었다. 낭트칙령으로 프랑스 개신교인들이 박해받을 때 프로이센은 이들의 베를린 이주를 받아들였다. 그들이 오늘날 독일의 문화와 예술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역할을 한 것이다. 다문화 사람들도 우리나라에 와서 오래 살면 우리 국민이 되는 것이고, 인구 절벽을 헤쳐나가는 희망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다문화 수용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미얀마 사태는 다문화 운동의 관점보다는 80년 광주사태를 떠올리게 된다는 점에서 인류애에 기반한 참여다. 당시 나도 서울에 있으면서 광주 소식을 간간이 들었다. 전두환 씨가 광주뿐만 아니라 전남을 애워싸고 차단한 상태로 양민을 학살한 것인데, 그런 사건이 미얀마에서 나타난 것이다. 당시 전남지역은 아예 전화를 차단하여 통화조차 할 수 없었다. 그나마 미얀마는 SNS를 통해 서로 생사를 확인한다는 점에서 좀 더 빨리 사건이 확산되고 공유되는 것 같아 다행이다. 우리가 함께 기도하면서 화요일 정오마다 미얀마를 위한 기도를 하고 미얀마 후원을 하고 있는데, 먼저 이를 제안하고 함께하시는 시민사회재단의 조종건 대표께도 특별히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Q. 서울권 대학 입시 편중으로 인한 어려움 없는지.
A. 아직은 괜찮은데, 우리 학교도 올해 처음으로 정원 100%를 채우지 못했다. 그만큼 안전하지 않다고 보고 있는데, 우리 대학은 수도권 대학에 묶여서 증원도 할 수 없다. 반면 지방대학들은 지속적으로 증원을 허용해오다가 입시 인구의 감소로 엄청난 재정난에 직면하고 있다. 지금의 지방대학 문제는 학생들이 일자리가 많은 수도권에 몰리기 때문인데, 이런 문제는 대학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역균형발전의 문제로 보고 제도적인 개선책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Q. 취임하신 후에 중점을 두고 있는 분야는.
A. 삼성전자나 LG전자 등이 들어오면서 기업과의 MOU에 대해서도 검토하고 있다. 또 평택시와는 지속발전가능위원회를 통해 시민들에게 정서적·문화적 만족감을 주는 문제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는 말씀은 물질만 충족된다고 해서 삶의 질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평택시가 외형적으로는 엄청나게 팽창하고 있으나 시민들의 정신적·문화적 발전도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시민들의 교양과 인문학을 공부할 수 있는 인문학 시민대학을 운영하고자 한다. 지금은 취임 4개월이라 기독교 학교로서 정체성을 가지자는 것이 우선적인 정책이다. 기독교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기독교 학교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교계와의 관계를 회복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Q. 전임총장의 복귀문제나 학교 쇄신을 위한 바람직한 대책은.
A. 법적으로는 현재 총장이 있다. 다만 학교 구성원들의 총장 복귀 반대 여론이 강하여 총장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되는 것이다. 그로 인한 학내 갈등은 사실상 없다. 90% 이상의 교직원들과 학생들, 그리고 총학생회까지 나서서 총장 복귀를 반대하는 실정이다. 재단 이사회도 임시 이사님들이 오셔서 학교가 많이 안정되었고, 객관적이고 편견 없이 판단하시기 때문에 이사회에서도 학교를 위한 올바른 판단을 해주실 것이라 믿는다.
Q. 개인적으로 직을 수행하는 마음가짐이 있다면.
A. 내가 언제까지 이 직을 맡을지 모르지만, 구성원들이 비전을 공유하고 있기에 목회하는 심정으로 총장직을 수행하고자 한다. 저의 모든 관심은 우리 학생들이다. 학생들을 섬기는 것이 내 책무이므로 우리 학생들이 기독교 정신으로 잘 성장하도록 돕고 싶다. 또 우리 학교뿐 아니라 많은 대학들이 재정적인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교계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란다. 학교를 위해 기도하는 300명이 1200명이 되고 1만 명이 되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더불어 과도기 체제에 제게 주어진 소명은 새로운 총장 선출제도와 제도개선 그리고 정이사 체제로 가는 과정을 슬기롭게 이루는 것이라 생각한다.
글 이우영 편집장 master@gohuman.co.kr